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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버보드: 유행은 탔지만 신뢰는 잃었다

by 망고사이언스 2025. 5. 29.

이 글은 짧은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호버보드가 왜 갑작스럽게 사라졌는지, 그 흥망의 과정을 기술과 안전, 사회 수용성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호버보드: 유행은 탔지만 신뢰는 잃었다
호버보드: 유행은 탔지만 신뢰는 잃었다

갑자기 나타나 전 세계를 휩쓴 바퀴 달린 판

2015년경, 세계 곳곳에서 작고 두 바퀴 달린 전동 보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라는 호기심을 자아냈고, 이내 셀럽들의 SNS, 유튜브 리뷰, 틱톡 영상 등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 장치는 흔히 “호버보드(Hoverboard)”라고 불렸다.

사실 이 이름은 1989년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서 나온 공중에 뜨는 보드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실제 제품은 두 바퀴가 달린 균형형 전동 스쿠터였다. 사용자가 보드 위에 올라서 몸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면, 이를 감지한 센서가 회전 및 전진·후진을 조정해주는 원리다. 조작법이 직관적이었고, 전기로 구동되며, 공간도 적게 차지해 젊은 층과 어린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 호버보드는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새로운 개인 모빌리티’로 주목받았다. 특히 도심 생활자들이 단거리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기 적합했고, 전동 킥보드보다 가격이 저렴하며 부피도 작았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호버보드는 ‘미래형 탈것’의 대중화 버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빠르게 터졌다.

 

폭발하는 보드, 무너지는 신뢰

호버보드의 몰락은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 전방위적인 신뢰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기술적 완성도 부족, 안전 기준 미비, 규제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급격한 ‘역풍’을 맞은 것이다.

① 잇따른 폭발 사고: 기술보다 값싼 조립의 결과
호버보드가 시장에 빠르게 퍼진 이유 중 하나는 중국 OEM 제품의 대량 생산이다. 기술 장벽이 낮았고, 부품만 조달하면 쉽게 조립이 가능했기 때문에, 수많은 브랜드가 저가형 제품을 내놓았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품질 관리와 안전 인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건 배터리와 충전 회로. 리튬이온 배터리가 불량하거나 과열되면 폭발이나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데, 싸구려 부품을 사용한 호버보드들이 실제로 집안에서 충전 중 폭발하거나 주행 중 불꽃이 일어나는 사례가 속출했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2015~2016년 사이 수백 건의 사고와 최소 수십 건의 화재 피해를 접수했고, 결국 대대적인 리콜과 판매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아마존을 포함한 주요 온라인 쇼핑몰들은 일제히 호버보드 판매를 중단했고, 항공사들은 기내 반입 금지를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제품 전반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급격히 추락했고, 호버보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② 법의 사각지대에서 규제 대상이 되기까지
기술은 앞섰지만, 법과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호버보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교통수단인지, 장난감인지, 스포츠 용품인지조차 정의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안전모 착용 여부, 도로 주행 가능 여부, 속도 제한 등이 명확하지 않았고, 이는 혼란과 사고로 이어졌다.

도심 보도에서 고속으로 주행하다가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건, 무면허 어린이 사용 중의 낙상 사고, 주차장 언덕에서 전복되는 사고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세계 각국은 호버보드에 대한 규제 마련에 착수하게 된다.

영국: 공공도로 및 인도 주행 전면 금지

독일: 도로교통법상 미인증 전동차량으로 금지

한국: 도로 주행 불가, 자전거도로 통행 금지

미국 일부 주: 공공장소 운행 제한, 안전장비 필수

호버보드는 점점 더 ‘타기 어려운 기기’가 되어갔다.

③ 지속성 없는 유행: 기능은 적고 불편은 많다
호버보드는 처음에는 재미있지만, 곧 단점이 드러났다. 작은 바퀴와 낮은 차체는 작은 턱에도 쉽게 넘어졌고, 배터리 지속 시간은 짧았으며, 속도도 제한적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바퀴가 미끄러지기 쉬웠고, 일반인이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엔 신뢰성과 내구성이 너무 부족했다.

결국 사람들은 잠깐 타고 SNS에 올리는 용도로 소비하기 시작했고, 이마저도 사고가 늘면서 한순간에 유행이 식었다. 제품은 싸지만, 위험하고 불편하고 규제가 많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유행은 끝났지만, 남긴 과제는 현재진행형

호버보드는 불과 1~2년 만에 급부상했다가 사라졌지만, 이 경험은 오늘날의 개인 이동수단(Personal Mobility)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① 새로운 기술은 ‘완성도’와 ‘신뢰’가 생명이다
호버보드의 사례는 기술 제품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높은 안전성과 품질 기준을 갖춰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재미있어 보여도, 실제 사용에서 사고 위험이 있거나, 관리가 어려우면 소비자는 외면하게 된다.

이는 오늘날 전동 킥보드, 전기자전거, 자율주행차 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배터리 기술과 충전 안전성, 고속 주행에서의 제어 안정성 등은 기술뿐 아니라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다.

② 규제는 기술보다 늦게 오지만, 결국 온다
호버보드는 처음엔 규제 사각지대에서 자유로웠지만, 문제가 생기자 순식간에 엄격한 금지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기술 기업들이 규제 리스크를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으로는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과제가 남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발맞춰 탄력적이고 유연한 규제 프레임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호버보드는 분명히 드러냈다.

③ 모빌리티의 본질은 ‘편리함+지속성’
결국 이동수단이란,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편리함과 신뢰성이 생명이다. 호버보드는 한때 유행이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이동’을 바꾸지는 못했다.
반면, 지금은 전동 킥보드, 전기자전거, 공유 스쿠터 등 다양한 개인 이동수단이 실제 도시 속에 스며들고 있다. 이들은 기능성과 정책을 절충해 호버보드가 못 했던 ‘생활화’를 이루고 있다.


호버보드는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에게 ‘탈것의 재미’와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기술적 완성도, 안전성, 제도적 수용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너무 이른 실패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의 모빌리티를 더 신중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교통 기술에 대한 기준이 생겼다. 호버보드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현대 기술 문화 속에 남아 있다.